나의 이야기

아줌마 산책길에 인생길도(道) 걸어보다

이마마 2013. 7. 16. 19:25

 

 

이 동네로 이사오고서 산책하는 일이 나의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가깝게 현충원, 덕명 오솔길, 수통골 등이 있는데 운동겸, 등산겸, 산책겸, 걷기에 모두 훌륭한 곳이다.

특히 현충원은 두 시간 정도 6~7km를 걸으며 사색하기에 정말 그만이다.

그윽한 소나무 숲길은 배병우씨 사진 속 같고, 사샥대는 대숲길은 바람도 음악이 된다.

울창하면서도 편안한 그 곳은, 묘지라는, 망자의 공간이라는 느낌보다는 진정한 안식처란 생각이 들어서 죽음이라는 것이 그곳에선 이별, 슬픔,두려움으로 다가오지 않고 그냥 자연스러운, 자연의 순환이라는 걸 인정하고, 살아감도 소멸됨도 차분히 받아들이게 된다.

 

 

 올봄은 유난히 날씨가 고르지 못했는데, 4월인가쯤에 태풍도 아닌데 강풍으로   전국이 피해를 입었을 때였다.  가로수가 쓰러지고 정전 피해도 나고 하던 때였는데, 현충원 대숲길도 큰 피해를 입었다.  쓰러지고, 부러지고,꺾어지고, 휘어지고 아주 초토화였다.

다음 주에  찾아갔더니 피해를 입은 대나무들이 몽땅 치워져서 거기가 대숲이었나 할 정도로 황량했다.  아 어쩌나..  멋있는 장소가 없어져서. 이렇게 아깝고 안타까울 수가...  앞으로는 곧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니.. 

 헌데 그 다음 주부터 뾰족뽀족 죽순이 올라왔다.  작년에도 물론 죽순을 보았다.  간간히, 몇개씩, 반갑게.  그런데 올해는 온통 죽순의 밭이 되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죽순이 올라왔다.  다음 주에 갔을 때 죽순은 이미 순이 아니었다.  동화 '잭과 콩나무'처럼, 마술처럼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여리고 어린 대나무들이 금새 울창함을 만들어 놓았다.  자연의 치유력이나 복원력은 인간의 기대 이상인가보다. 케냐에서 가뭄에 죽어가는 아기 코끼리를 보여준 다큐 프로그램의 에필로그에서 가뭄이 끝나고, 살아남은 코끼리들이 건강한 삶을 찾고 다음 해에 250마리가 넘는 아기 코끼리가 태어났다고, 베이비 붐이라 했는데, 하긴 우리 세대가 전후 베이비 붐 세대라고 하니,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다 마찬가지인가 보다.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빠르고 많은 번식을  가져오는게 아닌지.

 

 괜한 걱정을 한 것이다.

 보라. 이렇게 세상은 다시 돌아간다. 아니 전보다 더 울창하게, 더 발전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전에 그 자리를 지키던 늙은 대나무는 갔지만, 그렇기에 이렇게도 새로운 푸르름이 자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놀랍고도 명백하며 당연한 이치를 이제야 본 것 같다. 아이들, 청년들이 영 미덥지 못한 어른들을 데려다 넌즈시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새로 자란 대나무는 왕왕한 기세로 자유롭게 성장하며 나에게 활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라 .. 그런데 또 몇 주가 지나니, 이게 또 다가 아니었다.

 마구 자라는 가지들이 엉망으로 어지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건 대숲이 아니라 풀숲이었다. 크게 자라 왕대의 청청함을 보일 놈은 없고 몽땅 빗자루 감으로 자라는게 아닌가. 게다가 함부로 가늘고 길게만 뻗은 가지는 사람들의 통행도 어렵게 만들었다.

통제와 규율, 전체로서의 조화, 훈육이나 돌봄.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냥 놔두는 것은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니리라.

자르는 수고로움과 잘리는 아픔이 있겠지만, 방치는 책임없는

짓이 될 것이고, 앞을 멀리 두고 봐야한다면 누군가 낫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한 넉 달 가량 나는 대숲길이 겪어내는 생과 사, 소멸과 복원, 아픔과 환희, 자유로움과 무질서를 함께 했다.

짧은 그길을 걸으며, 먼 내 인생길이 겹친다.

 

산책하며, 생각하며, 두 시간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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