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이 시작되려나 보다.
살갗에 물이 닿아도 아프고, 손가락 마디가 쑤셔오고, 춥다가 땀나고. 아주 엉망 컨디션이다.
왜 이런지 안다.
능력 이상으로 무리하고, 미련스럽게 강행하고, 어리석게도 자제하지 못 해서다.
나의 지론 중에 [무리론]이 있다. 찬밥론, 종지론에 이어서 ㅋㅋ
무엇을 하던지 그것이 자기 것이 되려면, 일정한 수준이나 단계를 넘어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도, 악기도 그렇겠지만, 특히 연습을 통해 익히고 숙련되고 표현되는, 즉 손 쓰고 몸 쓰는 일들은
미련하고 우직하게 무리를 통해서만 어느 수준에 이르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헝겊 인형에 이어 니팅돌(knitting doll) 을 알게되고, 그 영국 미남 작가 알란다트씨를 알고부터 나는 또 무리를 하고 있다.
이미 영국으로부터 구입하고자 하는 도안들은 다 정했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아직은.
나는 그의 도안을 사기 전에, 그 도안을 볼 수 있는 공부를 해야하고, 그 도안대로 뜨게질을 할 수 있도록
뜨게질에 숙련되어야 한다. 하루 빨리. 무리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여섯살 때 엄마에게 줄넘기를 사달라고 했다. 50년전 기억이,그 어슴프레한 저녁 나절이 생생하다.
오전에 엄마는 새끼줄을(이걸 사투리로 산내끼라고 한 것도 기억난다) 주면서 열 번을 연속해서 넘으면 사 준다고 하셨다.
나는 하루 종일 거듭 연습을 해서 저녁밥을 하고 계시던 엄마를 불러내 열 번을 넘어보였고, 그 길로 줄넘기를 사왔다.
지금도 그렇다. 하루종일 뜨게질을 한다. 영문 도안을 보며 강아지도, 요정도, 소녀도 떠보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빡세고 오지게 하고, 점심엔 달걀 부침, 저녁엔 라면 먹으며 오직 뜨게질에 몰두한다.
밤까지 그러다가 도저히 눈이 아파 뜰 수가 없으면 술을 마시고 잔다.
사회성도 없어져 가고 있다. 장보러 마트에 가는 것도 싫고, 친구들에게 연락도 안하고,가족도 안 챙긴다.
나는 머지않아 알란다트의 작품을 할 것이다.
니팅돌 매스터라는 자격 없이도 못지않게 작품을 완성시킬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 고수가 될 것이다. 되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 과연 될까?
몸이 아프다. 자다가도 손이 아프다. 어깨와 눈도 아프다. 옆구리도 결린다. 등에 뭔가 찔리는 것 같다....
나는 무리를 하고 있다. 나는 한 단계를 넘어서고 있는 중이다.
.
.
.
미련한 데는 약도 없다더니. 미련은 먼저 나고 슬기는 나중에 난다더니
고수가 되는 길은 꼭 무리한 , 벽을 뚫어버릴 미련만은 아니었다.
즐기면 되는 거다.
진정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 고수인 거다.
하이고.. 쉽고, 편하고, 산뜻한 길이 있었는데 ...
문득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알란다트씨의 도움이 주요했다.
그의 사이트 FAQ란에 이런 종류의 고민을 올린 글에 대한 그 미남 작가의 답이 내게 답이 되었다.
You're doing this for enjoyment. So, take your time and relax.
나 이거 지금 왜 하고 있는거야.
왜긴 좋아서 하는 거지.
그럼 ..
"Pearl the Knitter" from http://www.alandart.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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