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 지금 내 마음에 있는 것
* 하나: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 이건 장난이 아니야
알란다트의 작품 도안 4개를 사서 40여장이 넘는 분량을 커다랗게 프린트 해왔다. 으하하... 할 일이 엄청나네. 엄두가 안 난다.
이제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정성스럽게 시작하는 거야. 그런데 이거 정말 혼자 할 수 있을까...장난이 아니네. 얘야, 난 장난을 하고 있는게 아니야. 자꾸 읽어보면 영어는 문제도 아닌데, 진짜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고, 더 진짜 문제는 솜씨있게, 맵시나게 만들어 낼 수 있느냐다. 실도 왕창 샀다. 드디어 실감이 난다. 그런데 색상이... 모니터로 보는 색상과도 다르고, 원래 사용한 영국의 실을 살 길도 없으니,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접어야 하기도 하겠다.하여튼 겨울 지낼 준비를 한 것 같다.
실 뭉치들을 보니 김장거리 쌓아둔 것 같은데..김장은 모르는 나라 이야기고..참 '나'라는 여자도 어지간하고 거시기 하다.
* 둘 : 걷고 싶은 가을 길 -- 내일이면 늦으리
가을이 깊어진 모습이다. 매일 가는 현충원 길도 완전한 가을이다. 은행잎은 가로등을 켠 듯이 환하게 밝은 빛깔이 절정이다.내일이면 늦다. 같은 노란색이지만 물기가 점점 말라가는 것을 감출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퇴색해 가다가 낙엽으로 떨어지겠지.그러나 슬플 일도 아니다. 낙엽은 단풍보다 한 수 위였다. 나는 그렇게 느껴왔다. 은행잎 지고 쌓인 길을 걷고 있으면,내가 멋있다고 착각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차가 지나가면 낙엽이 꽃가루처럼 날아오르고..그러면 레디..액션! 소리가 들릴 듯 하겠지.
산수유 빨간 열매 -- 지난 봄 노랗고 여린 꽃의 기억은 어디에도 없다.
산책 다니며 별별걸 다 따 온다. 요만큼만 산수유주를 담궈야지.
도토리 주워와 묵도 직접 쑤어 먹고, 잣도 한 줌이나 주웠다.
* 셋 : 나는 오늘 밤 스페인으로 떠난다.-- 내게 여행이란
자정에 나는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21년만에 다시 가는 스페인이다. 그때는 마드리드와 톨레도만 보고 왔어서 거의 처음가는 곳이다. 옛날엔 여행가기 전에 조사,공부등등 매우 분주히, 철저히 준비를 했는데 지금은 안한다. 짐도 다 안 꾸리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장난 중이니...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매우 옳다. 그러나 나는 자꾸 뭘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지력이 떨어져서,게을러져서, 아니 늙어서 그런가보다. 스페인 여행 책을 네권이나 빌려다 놨는데 안 읽었다.그냥 가서 '거기 내가 있는 것' '거기 그때 내가 보며 느끼는 것'이 요즘 나의 여행 이유이다. 해서 젊어서처럼 볼 것, 할 것, 먹을 것,갈 곳을 조사하고 정리해서 준비하지 않는다.
Just I want to be there.그 뿐이다. 그렇게 내가 아직 이 세상 곳곳에 존재함을 느끼는 것이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80대이신 부모님과 9월에 일본 여행을 하며 느낀 것이 그런 것이다. 더 좋은 경치, 새로운 장소, 하며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이런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부모님께는 추억의 장소, 옛날에 먹었던 것, 그냥 좀 평온한 것이 더 중요했다.
내가 혜민 스님의 책을 여행지에서 틈틈히 읽으니 어머니가 빌려달라고 하셨다.오랫만에 독서 지도를 했다. "그냥 편안하게 읽으세요.읽다가 자꾸 딴 생각이 나거나 공감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냥 패스하시고, 무슨 말인지 다시 읽으려 하지 마세요.차라리 그시간에 마음에 드는 구절을 두 번, 세 번 읽는 게 나아요." 참 적절한 독서 지도를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이건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나는 이제 몇시간 후 떠난다.그냥.나를 가지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