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을 - 거두기..거둬들이기
가을이다. 여러 의미로 가을이다.
10월이니 계절이 가을이고, 내나이와 상태가 갱년기라는 가을이다.
가을은 수확의 철이라 들에도 곡식이 그득하고 산에도 열매가 풍성하다
벼가 잘익은 황금 벌판은 꽃밭보다 아름다웠고, 등산길에 주워온 산밤으로 일주일 아침을 먹었다.
농부도 거두고, 다람쥐도 거두고, 나도 자연이 주는 혜택을 받아 거두었다.
함양 - 지리산 오르막 길, 추수 중인 논
나는 지금 가을이란다. TV에서 사회자가 '인생의 가을, 갱년기에 대해 알아봅시다'그런다. 아! 가을이구나.내가. 그랬다.
그런데 결실도, 수확도 아닌, 기우는, 그저 3/4분기의 의미로구나. 요즘 힘든다. 정말로. 발열, 발한,우울,불면,관절통,집중력 장애, 짜증, 무기력...소위 갱년기 증상이라는 모든 것에 해당된다. 아~~ 늙기도 이렇게 힘드는구나. 한때는 폐경기라는 말보다 완경기라고 말하며 이 시기를 좀 그럴듯하게 포장도 했다. "이제 여성성이 아닌 인간성으로 승부를 보겠어" 뭐 이렇게. 그리고 완경 기념 여행으로 내게 그동안 여자로, 여성으로 한 수고를 보상한다고도 했다. 근데 그건 작년까지의, 즉 아직 매운 맛을 보기 전의 일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옆에서 사우나에 들어앉은 듯 땀을 혼자 비오듯 흘려대니...이런 거였다니.나는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겠지...곧 지나고..나아지겠지..수많은 그녀들도 다 그랬겠지..
결실을 거두는 계절에, 나는 거둬들이기를 생각한다. 간소하게, 단순하게, 깔끔하게 나는 노년을 보내고 싶으니까, 별로 뻗치고, 떨치고 살지도 않았지만, 더 소소하게, 단출하게 내 생활을 다듬어 내야겠다. 내 마음의 치장도 거둬들이고, 내 생각의 오만도 거둬들이고, 몇 가지만, 정말로 지니고 싶은 몇 가지만과 함께 가자 싶다. 사실 그 이상으로 욕심을 내봤자 감당할 수도 없는 거니까. 1년동안 거의 만지지도 않았던 가야금에 먼지를 닦으며 나는 첫 번째 실천으로 이렇게 결정한다. '이제 앞으로 평생 이 네 곡만 <완벽히> 연습해야지. 아니 이 네 곡만이라도 잊지 말아야지.너무 소극적인 태돈가? 아냐. 현실적인 결정이야. 그것도 여간의 노력이 필요할 걸.' 성금련류, 김죽파류 가야금 짧은 산조. 그리고 황병기 선생의 남도 환상곡과 밤의 소리. 악기에 대해선 다른 욕심 다 거둬들이고, 그것만이라도 거두었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