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통골을 즐기는 나의 방식

이마마 2013. 5. 23. 20:55

 

 

수통골 근처로 이사온 후, 전에는 못해본 방식으로  산을 즐기고 있다. 대전 근교에서 사람들이 가장 쉽고 만만하게 찾는 등산지인

수통골. 나도 전엔 가벼운 등산이나, 모임때, 혹은 식사하러 오곤 했는데 그리 큰 매력은 느끼지 못했던 곳이었다. 늘 사람이 많아

덥고 복잡했던 기억 뿐. 날이 저물거나 비가 오면 서둘러 산을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좀 다른 시간의

산 모습이 보고 싶었다. 저녁 무렵이나 비가 오는 날, 아침의 이른 시간. 이런 때 산에 가고 싶었지만 사실 그런때 가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걸어서 가도 가능한 거리 안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전부터 해보고 싶은 것들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우선 저녁 도시락 싸서 산에 가기. 점심말고 저녁에 먹을 밥 말이다. 5월 하순부터는 6시도 밝음이 웬만하다. 단출하게 몇가지 넣어

가져가도 어슴해지는 저녁 시간에 산 속에 앉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은 이미 신선이다. 산에 높이, 깊이 들어갈 필요도 없다.

목적은 등산이 아니라 밥 먹기니까. 조금은 고적하여 무섬증이 얼핏 들다가도, 남들 다 내려가는 시간에, 남다른 짓을 한다는 치기어린 우월감이 밥 맛을 더한다.

 

그 다음에 한 것은 비 올 때 산에 가기. 등산 계획을 세우다가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면 미루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어쩌다 산에 갔는데 비를 만나기도 한다. 어릴적 갑사에서 세찬 비를 만났는데, 추녀밑에 서서 비를 피하며 본 광경이 깊이 뇌리에 남아있다. 신성스럽고, 모든 것과 단절된 정지된 진공 상태. 두려우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끌림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소나기였던 여름비는 짧고 강하게 내리다 뚝! 그쳤고 ,나는  최면에서 깨어난 것 같은, 아니 손목에 전기 통하기 놀이처럼, 그 광경에서 놓여나며 저릿저릿 팽그르르 혼미했었다. 산 위로 하얀, 정말로 하얀 구름이 피어올랐는데 신선이라 굳게 믿었다. 어릴 때 기억은 잊혀졌고 위험하고 불편하다는 보편적인 상식이 나를 지배하던 40년을 지나, 다시 그 신선한 기운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산 가까이 오니 비가 와도 가기가 만만하다. 그냥 산책하면 되니까. 역시 높이, 깊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 그냥 나뭇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가지가 젖어가는 색깔의 변화, 뿌연 시야 그리고 짙어지는 산의 냄새를 느끼면 충분하다. 산이 젖어가며 생기를 채우는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른 아침에 산에 가기. 보약을 먹으러 가는 느낌이랄까, 병이 있다면 나을 것 같은 상쾌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햇살이 퍼지면서 나뭇잎 끝에서 반짝이고 새소리는 바쁘고, 청량한 산의 향기가 가장 강하게 맡아지는 시간이다. 이른 아침에 산에가면 성실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자연을 느끼고 살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나이 들수록 점점 더 자연이 눈에 든다. 산, 바람, 풀꽃, 비, 나뭇잎,새소리, 흐르는 물, 밤이 오는 모양, ...나도 그것과 같이.